1.뜻밖의 파티
땅 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굴이라고는 하지만 지렁이가 우글거리고 지저분하고 더럽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앉을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메마른 모래만 깔려 있는 건조한 굴도 아니었다. 그곳은 호빗의 굴이었고, 그것은 곧 안락함을 의미했다.
그곳에는 배의 창문처럼 아주 둥근 초록색 문이 나 있는데, 그문 한가운데에는 반짝이는 노란 놋쇠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문을 열면 터널처럼 생긴 원통 모양의 복도가 보였다. 연기도 끼지않는 안락한 복도의 벽은 네모난 판자로 장식되었고, 타일을 깐 바닥에는 카펫이, 그위에는 반짝이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입구의 벽에는 모자와 코드를 걸도록 못들이 수없이 박혀 있었다. 이 호빗은 손님을 맞이하는 걸 아주 좋아했던 것이다. 터널 같은 복도는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자로 잰 듯 곧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언덕(이 근처 수킬로미터 내에 사는 사람들은 '언덕' 이라고 불렀다.) 비탈로 곧게 이어졌는데, 복도 양옆으로 조그맣고 둥근 문들이 번갈아 가며 하나씩 나 있었다. 호빗들에겐 위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다. 침실, 욕실, 저장실, 식품 저장실(상당히 많았다) 의상실(그는 여러 칸의 방을 전부 옷으로 채웠다), 부엌, 식당이 모두 같은 층에 있고, 사실상 하나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장 좋은 방들은 모두 입구 왼쪽에 있는데 거기에만 창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깊게 패인 둥근 창문 너머로 그의 정원이 보였고, 그 너머 강 쪽으로 경사진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호빗은 아주 유복했고 이름은 골목쟁이네 빌보였다. 골목쟁이 집안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언덕에 살았고, 이웃들은 그들을 매우 점젆은 집안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부유할뿐 아니라, 모험이나 예상 밖의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목쟁이 집안의 호빗이 어떤 문제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지는 괜히 귀찮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 골목쟁이 집안의 한 호빗이 모험을 하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가 이웃의 존경을 잃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얻기도 했다. 글쎄, 그가 결국 무엇을 얻었는지 어떤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 각별한 호빗의 어머니는....아참, 그런데 호빗이란 무엇일까? 오늘날에는 호빗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호빗은 매우 희귀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큰사람이라고 부르는 우리에 대해 매우 부끄러움을 타고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키가 우리 절반쯤 되고, 턱수염이 있는 난쟁이들보다 작은 인간이다. 호빗들은 턱수염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술을 거의, 아니 전혀 부릴 줄 모른다. 여러분이나 나같이 크고 어리석은 족속이 코끼리같이 끙킁대며 어슬렁거리면 1, 2킬로미터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듣고 조용히 재빠르게 사라지는 평범한 재주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배가 불룩 나오는 경향이 있으며, 보통 초록색이나 노란색 같은 밝은 색 옷을 입는다. 신발은 신지 않는다. 발바닥이 천연 가죽처럼 질기고, 머리카락과 똑같은 굵고 곱슬거리는 갈색 털이 발을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재주 많은 갈색의 긴 손가락, 선량한 얼굴, 깊고 풍부한 웃음소리....... 가능하면 하루에 저녁 식사를 두 번 하고, 먹고 나서는 특히 큰 소리로 웃는다. 이제 호빗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을 테니 이야기를 계속 하자.
아까 말한 것처럼 이 호빗, 즉 골목쟁이네 빌보의 어머니는 그 유명한 툭 집안의 벨라돈나이고, 언덕 아래로 흐르는 작은 강 건너편에 사는 호빗들의 우두머리인 툭 노인의 훌륭한 세 딸 중 한명이었다. 다른 집안에서 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오래 전에 이 툭의 조상 중 한명은 요정 아내를 얻었을 거라고 한다. 물론 황당한 말이지만 분명히 그들에게는 호빗답지 않은 데가 있었고, 간혹 툭 집안의 한두 명은 어디론가 모험을 떠나곤 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사라졌고 가족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 때문에, 툭 집안은 분명 더 부자이기는 했지만 골목쟁이 집안만큼 존경받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툭 집안의 벨라돈나가 골목쟁이네 붕고 부인이 된 다음에 모험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빌보의 아버지인 붕고는 아내를 위해(그녀의 돈도 일부 들여서) 언덕 아래와 언덕 너머, 그리고 강 건너에 이르기까지 찾아보기 어려운 아주 호화로운 호빗굴집을 지었고, 거기에서 그들은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녀의 외아들인 빌보는 외모나 행동이 견실하고 유쾌한 게 아버지를 마지 복제한 듯 꼭 닮았다. 하지만 툭 집안에서 이어받은 뭔가 약간 기묘한 기질이 숨어 있어서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기질이 나타날 기회만 기다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골목쟁이네 빌보가 50여 세로 어른이 될 때까지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지은 그 아름다운 호빗굴집에서 살았고 사실상 확고하게 정착한 듯이 보였다.
오래 전,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고요하고 초록빛 풀이 더 무성하고 호빗들이 더욱 번성하던 시절의 어느 아침, 골목쟁이네 빌보는 아침을 먹은 뒤 그의 집 문앞에 서서 말끔하게 빗질한 털로 뒤덮인 그의 발가락에 닿을 정도로 긴 나무 담뱃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간달프가 그 앞을 지나간 것은 정말로 묘한 우연이었다. 간달프라! 내가 그에 관해 들은 이야기는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지만 만약 여러분이 내가 들은 이야기의 반에 반만 들었더라도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 이야기와 모험이 싹트듯 생겨났는데, 그것은 아주 놀라운 것들이었다.그는 친구였던 툭 노인이 죽은 뒤로 오랫동안 언덕 아래 땅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호빗들은 그의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의 호빗들이 어린 아이였던 시절에, 볼일을 보러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멀리 떠난 후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 아침 빌보가 무심코 본 것은 지팡이를 든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높고 뾰족한 푸른색 모자를 쓰고 긴 회색 망토를 걸치고는 은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 위로 흰 수염이 허리춤 아래까지 흘러 내렸고 커다란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빌보는 이렇게 말했고 그건 진담이었다. 태양이 화창하게 빛나고 있었고 풀밭은 초록으로 무성했다. 그러나 간달프는 그늘진 모자 테보다 튀어나온 길고 짙은 눈썹 아래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무슨 뜻인가? 내게 좋은 아침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좋은 아침이란 뜻인가? 그것도 아니면 자네가 오늘 아침 기분이 좋다는 말인가, 아니면 뭔가를 하기에 좋은 아침이란 말인가?"
"그것 모두 다입니다. 덤으로 문 밖에서 담배 피우기에도 아주 좋은 아침이지요. 혹시 담뱃대를 갖고 계시면 제 담배를 넣어서 태우시지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해가 창창하게 남았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면서 빌보는 문 옆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아름다운 회색 연기 고리를 만들었다. 그것은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공중으로 올라가 언덕 너머로 흘러가 버렸다.
"대단히 멋지군!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연기 고리를 만들 시간이 없네. 실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모험에 같이 갈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찾기 어렵구먼."
"그럴 겁니다. 아마도 이 근방에서는요! 우리는 평범하고 얌전한 사람들이에요. 모험을 좋아하지 않지요. 모험이란 불쾌하고 곤혹스럽고 불편한 것 투성이에요! 저녁 식사에 늦게 되고요! 모험에서 볼 만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골목쟁이네는 이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바지 멜빵 뒤에 끼워 넣고는 연기를 내뿜어 더 큰 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아침 편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노인을 신경쓰지 않는 척했다. 그는 노인이 자기와 같은 부류가 아님을 알아챘고 빨리 가 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노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에 기대서서 아무 말 없이 호빗을 바라보았다. 빌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나중에는 약간 화나기까지 했다.
그는 견디다 못해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만, 여기 사는 우리는 모험을 바라지 않습니다! 언덕 너머나 강 건너에 가서 알아보시지요."
이 말로 그는 대화가 끝났음을 암시했다.
"자네는 '좋은 아침' 이라는 말을 참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는군! 이제 그 말은 내게서 벗어나고 싶고, 내가 가 버릴 때끼지 편치 않을 거라는 뜻이군."
"천만에요, 그럴 리가 있나요, 친애하는 어르신! 가만있자, 어르신의 성함을 모르는 것 같군요."
"그래, 그래, 친애하는 어르신이라. 그런데 나는 자네 이름을 알고 있네, 골목쟁이네 빌보. 그리고 자네도 내 이름을 알고 있어. 그게 내 이름이라는 걸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내가 간달프야. 간달프가 바로 나지! 내가 문 밖에서 물건 파는 행상인 양툭 집안 벨라돈나의 아들에게 좋은 아침이란 소리를 들을 때까지 살게 될 줄이야!"
"간달프, 간달프! 맙소사! 툭 할아버지께, 저절로 조여지고 명령할 때까지 풀어지지 않는 마술 다이아몬드 단추 한 쌍을 주셨던, 그 방랑하는 마법사 말인가요? 파티에서 용과 고블린과 거인과 공주의 구출, 그리고 과부 아들의 상상치도 못한 행운에 관한 멋진 이야기를 해주신 그 분이세요? 기억나요. 외할아버지께서 그것들을 하지 전날 저녁에 사용하곤 하셨어요. 대단했지요! 커다란 백합과 금어초와 금련화 모양의 불꽃이 하늘로 날아올라 저녁 내내 어스름 속에 걸려 있었어요."
골목쟁이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몰취미한 호빗은 아니고 꽃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저런! 그 수많은 차분한 젊은이들이 미친 듯이 모험을 찾아 푸른 바다로 떠나게 했던 그 간달프라고요?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고 요정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배를 타고 떠나 다른 해안을 항해하기도 했지요! 정말 세상은 옛날이 훨씬 더 재미, 아니 제말은 당신이 옛날에 이 마을을 완전히 뒤집어 놓곤 했다는 거죠, 죄송합니다만, 아직까지도 그런 일을 하고 계신 줄은 전혀 몰랐어요."
"내가 달리 뭘 하고 있어야 하겠나? 어쨌든 자네가 나에 관해 뭔가를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기쁘군. 자네가 최소한 내 불꽃놓이를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으니 희망이 없는 건 아니야. 사실 자네 할아버지 툭과 가엾은 벨라돈나를 봐서라도 난 자네가 원하는 걸 주겠네."
"죄송합니다만, 전 뭘 원한 적이 없는데요."
"아니, 그랬어. 지금 두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죄송하다고. 그러니 내 용서를 원한다는 뜻이지. 그래, 용서해 주지. 실은 더 나아가서 자네를 이 모험에 보내 주겠네. 나한테는 재미있는 일이고 자네한테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될걸세. 그리고 자네가 해낼 수만 있다면 아마도 상당한 수익을 얻게 될 거고."
"미안합니다! 감사하지만 전 어떤 모험도 원한 적이 없어요. 아무튼 오늘은 아니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하지만 언제든 원하실 때 차를 드시러 오세요. 내일은 어떨까요? 내일 오세요.안녕히 가세요!"
그 말을 하면서 호빗은 돌아서서 허둥지둥 둥근 초록색 문으로 들어가 재빨리 문을 닫아 버렸다. 하지만 무례해 보이진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마법사는 마법사니까.
'도대체 내가 뭐 하러 간달프에게 차를 마시러 오라고 했지!'
그는 중얼거리며 식료품실로 갔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케이크 한두 조각과 마실 것 한 잔이 있으면 놀란 가슴을 달래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간달프는 문 밖에 서서 오랫동안 조용히 웃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지팡이에 달려 있는 긴 못으로 호빗의 아름다운 초록 현관문에 이상한 표시를 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로 그때 빌보는 두 번째 케이크를 해치우고 모험에서 벗어나게 되어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빌보는 이미 간달프를 거의 잊고 있었다. 그는 약속을 수첩에 적어 두지 않으면 잘 기억하지 못했다. 가령 '간달프 차 수요일',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어제는 너무 당황해서 적어 놓을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차 마실 시간이 되기 바로 직전에 현관에서 벨이 크게 울렸다. 그제야 빌보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달려가 찻주전자를 올려 놓고 찻잔과 받침 접시, 케이크 한두 조각을 더 꺼낸 후 문으로 달려갔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려는데 문 앞에 서 있는 이는 간달프가 아니었다. 그는 황금 벨트에 푸른 수염을 쑤셔 넣고 암녹색 두건 아래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난쟁이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난쟁이는 기다리던 손님이라도 되는 양 밀고 들어왔다.
그는 제일 가까운 못에 두건 달린 외투를 걸어 놓고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당신께 봉사하겠습니다. 드왈린입니다."
"당신께 봉사하겠습니다. 골목쟁이네 빌보입니다."
호빗은 그 순간 너무 놀라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빌보가 덧붙였다.
"이제 막 차를 마시려던 참입니다. 들어오셔서 저와 함께 드시지요."
말투가 약간 딱딱하기는 했지만 그는 난쟁이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여러분 같으면 초대받지 않은 난쟁이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현관에 들어와서 옷을 벗어서 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은 테이블에 그리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사실은 이제 막 세 번째 케이크를 먹기 시작하려는데, 아까보다 벨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실례합니다!"
호빗은 이렇게 말하고 문으로 달려갔다.
'오셨군요!' 라고 이번에야말로 간달프에게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간달프가 아니었다. 그 대신 흰 수염에 붉은 두건을 쓴 아주 늙어 보이는 난쟁이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 또한 초대 받기라도 한 양. 문이 열리자마자 단숨에 뛰어들어왔다.
"보아하니 그들이 벌써 도착하기 시작했군."
그는 드왈린의 녹색 두건이 걸려 있는 걸 보고 말했다. 그는 그 옆에 자신의 붉은 두건을 걸고 나서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당신께 봉사하겠습니다. 발린입니다."
"감사합니다."
빌보는 숨이 차서 헐떡이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게 올 바른 인사말은 아니지만, '그들이 벌써 도착하기 시작했군.' 이란 말 때문에 몹시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는 손님 맞기를 좋아 했지만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에 누가 오는지 미리 알고 있는 걸 좋아했고, 또 자기가 직접 손님들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다. 빌보는 케이크가 동이 나지 않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인의 의무를 알고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건 지켜야 하니까, 그렇게 된다면 자기는 케이크를 못 먹게 될 것이었다.
"들어오셔서 차라도 좀 드세요!"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간신히 말했다.
"혹시 폐가 안 된다면 맥주가 더 좋은데요. 케이크도 싫지는 않지만, 혹시 씨가 든 케이크가 있으면 더 좋겠는데."
흰 수염의 발린이 말했다.
"많습니다!"
빌보는 자신도 놀라게 이렇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술 저장실로 달려가 1파인트 맥주 잔을 채우고, 저녁 식사 후에 먹으려고 오후에 구워 놓은 둥글고 먹음직스러운 씨가 든 케이크 두 조각을 가지러 실료품실로 뛰어갔다.
빌보가 거실로 돌아왔을 때 발린과 드왈린은 마치 오랜 친구 처럼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형제였다. 빌보가 그들 앞에 맥주와 케이크를 털썩 내려놓자 현관 벨이 다시 울렸다. 그리고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엔 분명 간달프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복도를 달려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니었다. 푸른 두건과 은색벨트 그리고 노란 수염에 연장이 든 자루와 삽을 들고 있는 난쟁이 두 명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이 뛰어드는 바람에 빌보는 놀랄 겨를 조차 없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난쟁이분들?"
"당신께 봉사하겠습니다. 킬리입니다."
한 명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한 명이 덧붙였다.
"그리고 필리입니다!"
그들은 푸른 두건을 벗으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당신과 당신 가족들에게도 봉사하겠습니다!"
빌보가 이번에는 예법을 기억해 내고 대답했다.
"보아하니 드왈린과 발린이 벌써 온 것 같은데. 우리도 그 무리에 끼자!'
킬리가 말했다.
'무리라고! 난 그 발음이 마음에 안 들어. 잠깐 앉아서 생각 좀 가다듬고 한 잔 마셔야겠어.'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구석에서 차를 딱 한 모금 마셨다. 그동안 네 난쟁이는 식탁에 둘러앉아 광산과 황금과 고블린과의 싸움과 용들의 약탈, 그리고 그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너무나 모험적으로 들리기에 알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치 장난꾸러기 호빗이 문고리를 뽑아 버리기라도 하는 듯 '딩동댕동' 하고 벨이 다시 울렸다.
"누가 또 온 모양입니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러자 필리가 대답했다.
"네 명 같은데요, 소리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아도 멀리서 우리 뒤를 따라오는 걸 봤거든요."
불쌍한 호빗은 복도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걸까?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그들이 저녁을 먹을 때까지 내내 머무르려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는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벨이 울려서 그는 깜짝놀라 문으로 달려나갔다. 넷이 아니라 다섯 명이었다. 그가 복도에서 생각하고 있는 동안 난쟁이가 한 명 더 온 것이었다. 빌보가 손잡이를 돌리자마자 모두 안으로 들어와 절을 하면서 차례대로 "당신께 봉사하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도리, 노리,오리,오인, 그리고 글로인이 그들 이름이었다. 곧바로 자줏빛 두건 둘, 회색, 갈색, 그리고 흰 두건이 각각 하나씩 못에 걸렸고, 그들은 제각각 금제, 은제 허리띠에 넓적한 손을 찔러 넣고 거실로 들어가 다른 이들과 합류했다. 벌써 거의 한 무리가 이루어져 있었다. 몇몇은 맥주, 몇 명은 흑맥주, 한 명은 커피, 그리고 모두가 케이크를 원하는 바람에 호빗은 한동안 매우 바빴다.
화덕에는 커다란 커피 주전자가 올려지고 씨가 든 케이크는 동이 났다. 난쟁이들이 버터 스콘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때, 커다란 노크 소리가 났다. 벨 소리가 아니라 호빗의 아름다운 초록 문을 탕탕 두드리는 소리였다.누군가 지팡이로 두드리는 것이었다!
빌보는 너무 화가 나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당황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복도를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 날은 그의 기억에서 가장 괴상한 수요일이었다. 그가 손잡이를 갑자기 홱 잡아당지자 그들은 모조리 함께 쏟아지듯 넘어지며 들어왔다. 난쟁이들이 또 있었다. 그것도 네 명씩이나! 그리고 그 뒤엔 간달프가 지팡이에 기대 선 채 웃고 있었다. 그는 지팡이로 두들겨서 예쁜 초록 문에 움푹 들어간 자국을 만들었고, 그러면서 전날 아침에 거기에 새겨 둔 비밀 표식을 지웠다.
"조심! 조심해야지! 이건 자네답지 않네, 빌보. 친구들이 밖에 서 있는데 그렇게 잠난감 총을 쏘듯이 문을 열다니. 자, 비푸르, 보푸르, 봄부르 그리고 특히 소린을 소개하지."
간달프가 말했다.
"당신께 봉사하겠습니다!"
비푸르와 보푸르, 그리고 봄부르가 나란히 서서 말했다. 그들은 노란 두건 두 개, 연녹색 하나 그리고 긴 은빛 술이 달린 하늘빛 푸른 두건을 걸어 놓았다. 제일 끝에 있는 두건은 엄청나게 중요한 난쟁이, 소린의 것이었고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참나무방패 소린이었다. 그는 발수건 위로 고꾸라져 넘어진 데다 비푸르, 보푸르, 봄부르 밑에 깔려 기분이 대단히 불쾌했다. 더구나 봄부르는 엄청나게 뚱뚱하고 무거웠다. 사실 소린은 아주 오만해서 '봉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엾은 골목쟁이내가 너무나 여러 번 사과를 했기 때문에 "이제 그만하게." 라고 불만스럽게 말하며 찌푸린 인상을 거두었다.
"이제 다 왔군!"
간달프는 외투에서 떼어 낼수 있는 아주 좋은 파티용 두건이 나란히 열세 개 걸려 있는 것을 보며 자기 모자를 못에 걸었다.
"아주 즐거운 모임이군! 늦게 온 사람도 먹고 마실수 있는 것이 좀 남아 있다면 좋겠는데! 저게 뭔가, 차? 아니, 됐네! 나는 적포도주만 조금 있으면 좋겠네."
"나도 그렇소."
소린이 말했다.
"나무딸기 쨈하고 사과 파이."
비푸르가 말했다.
"고기 파이하고 치즈."
보푸르가 말했다.
"돼지고기 파이하고 샐러드."
봄부르가 말했다.
"케이크 좀더, 맥주하고, 괜찮다면, 커피도요."
문 틈으로 다른 난쟁이들이 외쳤다.
"계란 몇 개 더 올려 주게. 그럼 고맙겠네!"
식료품실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호빗 등뒤에서 간달프가 소리쳤다.
"찬 닭고기하고 절인 오이도 좀 내오지!"
'내 식료품실에 뭐가 있는지 나만큼이나 잘 아는 것 같아!'
골목쟁이네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제 정말 당혹감을 느끼며 아주 끔찍한 모험이 바로 자기 집 안으로 쳐들어온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술병과 요리들, 나이프와 포크, 컵과 접시, 스푼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을 큰 쟁반에 담고 나서는 열이 올라 얼굴이 빨개지고 약이 올랐다. 그래서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 골칫덩어리 성가신 난쟁이들! 와서 좀 도와 주면 안 되나?"
그런데, 맙소사! 부엌 문앞에 발린과 드왈린, 그리고 드 뒤엔 필리와 킬리가 서 있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쟁반을 뺏어 들고 두개의 작은 식탁을 응접실로 가지고 가서 이 모든 걸 새로 차려 놓았다.
상석에 앉은 간달프를 중심으로 열세 명의 난쟁이들이 빙 둘러 앉았다다. 빌보는 화롯가의 작은 의자에 앉아서 비스킷을 갉아 먹으며 이 모든 일이 일상적인 것이고 전혀 모험이 아니라는 듯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이미 식욕은 멀리 달아난 후였다. 난쟁이들은 먹고 또 먹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마침내 그들이 의자를 뒤로 밀자 빌보는 접시와 컵들을 치우려고 일어났다.
"저녁 때까지 계실 거죠?"
빌보는 아주 정중하지만 꼭 간청하는 것은 아닌 어투로 말했다.
"물론이지! 그 후에도 말일세. 밤늦게까지 일이 끝나지 않을테니까. 먼저 노래부터 부르세. 자 이제 치우지!"
소린이 이렇게 말하자 열두 명의 난쟁이들은 벌떡 일어나 그릇을 높이 쌓아 올렸다. 물론 소린은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간달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쟁이들은 쟁반도 가져오지 않고는 접시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병까지 올려놓은 채 한 손으로 들고 갔다. 호빗이 깜짝 놀라 좇아가며 거의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조심해 주세요. 제발, 내가 할게요."하고 말리려 했지만 난쟁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컵을 부수고 접시를 박살내자!
나이프를 무디게 하고 포크를 구부리자!
이게 바로 골목쟁이네 빌보가 싫어하는짓!
병을 깨뜨리고 마개를 태워라!
식탁보를 찢고 비겨를 밟아버리자!
부엌 바닥에 우유를 부어라!
침대 매트에 뼈다귀를 던져라!
문마다 포도주를 뿌려라!
끊는 물통에 그릇을 쏟아 부어라!
큰 방망이로 두들겨라!
다 끝났는데도 멀쩡하거든
복도로 굴려 버려라!
이게 바로 골목쟁이네 빌보가 싫어하는 짓!
그러니 접시를 조심, 조심!
물론 그들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난쟁이들이 모든 것을 번개처럼 빨리 깨끗하게 치우고 안전하게 정돈하는 동안, 호빗은 부엌 한가운데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이 거실로 돌아왔을 때 소린은 화롯대에 발을 얹은 채 담뱃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아주 거대한 연기 고리를 내뿜어 굴뚝 위로, 벽난로의 시계 뒤로, 탁자 아래로, 그리고 천장 주위로,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날려 보냈다. 하지만 그 고리들은 간달프를 피할 만큼 재빠르지는 않았다. 팝! 간달프는 짤막한 사기 담뱃대로 좀더 작은 연기 고리를 만들어서 소린의 연기 고리 속으로 보내곤 했다. 간달프의 연기 고리들은 초록색으로 변하여 다시 마법사에게 들아와 그의 머리 위를
떠다녔다. 연기 고리들이 구름처럼 마법사 주위를 둘러싸지 어두운 불빛 속에서 그는 기이하고도 요상해 보였다. 빌보는 연기 고리를 좋아했으므로 가만히 서서 그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어제 아침 자기가 자랑스럽게 언덕 위로 바람에 날려보낸 연기 고리를 생각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자, 이제 음악을! 악기를 가져오게."
소린이 말했다.
킬리와 필리는 그들의 자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작은 바이올린을 가져왔다. 도리와 노리 그리고 오리는 외투에서 피리를 꺼냈고 봄부르는 복도에서 드럼을 가져왔다. 비푸르와 보푸르도 달려나가 지팡이를 사이에 두었던 클라리넷을 가져왔다. 드왈린과 발린이 말했다.
"아, 내 건 현관에 놔 두었는데요."
그러자 소린이 말했다.
"내 것도 같이 가져오게."
그들은 자기 몸집만한 첼로와 초록색 천에 싼 소린의 하프를 가져왔다. 아름다운 황금 하프였다. 소린이 하프를 켜자 그 즉시 너무도 달콤한 음악이 갑자기 시작되어서 빌보는 그 밖의 다른 것들을 모두 잊어버렸다. 그는 강을 넘어 그리고 언덕 아래 자기 호빗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이상한 달빛 아래의 어두운 땅으로 실려 가는 것 같았다.
언덕 쪽으로 열린 작은 창문으로 어둠이 밀려들었고 화로 불빛이 깜박거렸다. 아직 4월이었다. 그들이 연주를 계속 하는 동안, 벽에 비친 간달프의 수염 그림자가 끊임없이 흔들렸다.
어둠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화롯불도 꺼져 그림자마저 사라졌지만 그들은 연주를 계속 했다. 갑자기 한 명이 시작하자 다른 한 명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주를 계속 하면서, 옛날에 깊은 동굴집에서 부르던 낮고 굵은 난쟁이들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음악없이 가사를 몇 마디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차가운 안개산맥 너머
깊은 지하감옥, 오래 된 동굴로
새벽이 밝기 전에 떠나자.
희미하게 빛나는 마법의 금을 찾아서.
난쟁이 조상들은 강력한 주문을 걸었지
망치 소리가 종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사이에.
어두운 것들이 잠들어 있는 깊은 곳
높은 산 아래 텅 빈 궁전에서
고대의 왕과 요정의 군주를 위해
수없이 빛나는 금덩이
모양내고 두드리고, 빛을 붙잡아
칼 손잡이 보석에 숨겨 두고.
은목걸이에 걸었다네
꽃 처럼 피어난 별들을.
왕관에는 용의 화염을 매달고
꼬인 철사 그물로 달빛과 햇빛을 붙잡고.
차가운 안개산맥 너머 깊은 지하감옥, 오래 된 동굴로
새벽이 밝기 전에 떠나자.
오랫동안 잊혀진 금을 되찾기 위해.
자기들을 위해서는 술잔과
황금 하프를 조각했지. 인간이 들어가지 않는 곳
그 곳에서 그들은 오래 살았고
인간도 요정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불렀지.
높은 언덕에는 포효하는 소나무
한밤중에 신음하는 바람
붉은 불빛은 너울너울 번져가고 횃불처럼 타오르는 나무들.
작은 골짝엔 종이 울렸고
인간들은 창백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네.
불보다 흉포한 용의 분노
힘없는 탑과 집을 쓰러뜨렸지.
달빛 아래 산에선 연기 오르고
난쟁이들은 들었네. 운명이 짓밟는 소리.
궁전에서 달아나다 쓰러져 죽었지
그의 발치 아래, 달빛 아래에서.
험준한 안개산맥 너머로
깊은 지하감옥, 어둑한 동굴로
떠나자, 새벽이 밝기 전에.
그에게서 하프와 황금을 되찾으러!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호빗은 난쟁이들의 손과, 정교한 재주와 마술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이 솟아 오르고 있는 걸 느꼈다. 그것은 격렬하고도 질투 섞인 사랑이었고 난쟁이들 마음에 깊이 박혀 있는 욕망이었다.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툭 집안의 기질이 깨어났다. 그는 길을 떠나 거대한 산들이 보고 싶어졌다. 소나무가 울부짖는 소리와 폭포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동굴을 탐험하고 지팡이 대신 칼을 차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숲 위로 어두운 하늘에는 별들이 떠 있었다. 그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반짝이는 난쟁이들이의 보석을 생각했다. 갑자기 강 너머 숲에서 누군가가 나무에 불을 지른 듯 불꽃이 솟아 올랐다. 그는 조용한 자기 마을 언덕 위에 용들이 내려앉아 노략질을 하며 마을을 온통 불태운다고 상상했다. 그러자 온 몸이 떨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언덕 아래, 골목쟁이집에 평범한 골목쟁이네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몸을 떨며 일어섰다. 등불을 가져올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그런 척하며 나가고 싶었다. 술 저장실의 맥주통 뒤에 숨어서 난쟁이들이 다 갈 때까지 나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갑자기 그는 음악과 노래가 그쳤음을 깨달았앋. 난쟁이들이 모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어디 가는가?"
마치 호빗의 마음을 모두 다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 소린이 말했다.
"불을 좀 켜면 어떨까요?"
빌보가 변명하듯 말했다. 난쟁이들이 모두 다같이 말했다.
"우리는 어둠을 좋아하지. 은밀한 작업을 하는 데는 어두운게 좋으니까! 새벽이 오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아."
"물론이죠!"
빌보는 이렇게 말하며 서둘러 앉았다. 그러다 의자가 아니라 화롯대에 앉는 바람에 부지깽이와 삽이 요란한 소를 내며 넘어졌다.
"자! 조용히 하고 이제 소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
간달프가 말했다. 그러자 소린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달프와 난쟁이들, 그리고 골목쟁이네! 우린 우리의 친구이자 동료 공모자이며 가장 뛰어나고 대담한 호빗의 집에 다들 모였습니다. 그의 발의 털이 영원히 빠지지 않기를! 그의 포도주와 맥주에도 찬사를 보냅니다!"
이부분에서 그는 숨도 돌릴 겸 호빗의 정중한 답사를 기대하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그 찬사는 불쌍한 골목쟁이네 빌보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는 '대담' 하다든지 무엇보다 '동료 공모자' 라고 불린 데 대해 항의하려고 입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도 당황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린은 말을 계속 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과 행로, 수단, 지략, 책략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습니다. 우린 날이 밝기 전에 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아마 우리 중 일부, 아니면 전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여행이지요. 물론 우리의 친구이자 조언자이며 현명하신 마법사 간달프는 예외입니다만. 지금은 엄숙한 순간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골목쟁이네와 젊은 난쟁이 한둘, 킬리와 필리라고 명명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들에게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고 간단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소린이 말하는 방식은 이랬다. 그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만큼 형식적인 언사에 능했다. 그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아마도 그는 정작 알아야 될 것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두 다 아는 아야기만 하면서, 숨이 찰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말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무례하게도 누군가 그를 방해했다. 불쌍한 빌보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목구멍에서 비명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건 터널에서 빠져나온 기관차의 지적 소리처럼 터져 나왔다. 난쟁이들이 모두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탁자가 넘어졌다. 간달프가 마술 지팡이 끝에 푸른 불꽃을 일으키자. 난쟁이들은 그 불빛 아래에서 불쌍하고 작은 호빗이 화로 앞 양탄자에 무릎을 끊고 녹초가 되도록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빌보는 마루에 납작하게 엎드려 "벼락 맞았어, 벼락 맞았어!"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그래서 난쟁이들은 그를 일으켜 거실 소파로 옮긴 다음, 옆에 마실 것을 놓아둔 다음 자기들의 은밀한 얘기로 되돌아갔다.
그들이 다시 자리에 앉자 간달프가 말했다.
"흥분을 잘하는 친구라네. 좀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발작을 일으키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는 가장 뛰어난 녀석이야. 최고지. 위기에 몰린 용처럼 격렬하거든."
만약 여러분이 위기에 몰린 용을 본 적이 있다면, 이 말이 어떤 호빗에게 붙여 비유한다 하더라도 시적 과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설령 호빗이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거대해서 말을 탈 수 있을 정도였던 툭 영감의 증조 사촌 할아버지는 '황소울음꾼' 에게 붙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푸른벌판 전투' 에서 그램산의 고블린 대열에 뛰어들어 그들의 왕 골핌불의 머리를 나무 곤봉으로 쳐서 깨끗이 잘라냈던 호빗이다. 그 머리는 공중으로 백여 미터나 날아가 토끼 굴에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그 전투에서 승리했고 바로 그 순간 골프라는 경기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황소울음꾼의 마음 약한 손자는 거실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잔 마시고 나서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응접실 문으로 기어갔다. 그는 글로인이 '흠!'(콧방귀이거나 그런 좀 비슷한 소리 같았다) 하는 소리를 내는 걸 들었다.
"그가 도움이 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간달프께서 이 호빗이 격렬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흥분한 순간에 그처럼 비명을 내지른다면 용과 그 친척들을 모조리 깨워 우리를 모두 죽게 하고도 남을 겁니다. 내 생각에 그건 흥분했다기 보다 공포에 질린 소리 같았어요. 사실 문에 표시만 없었더라면 우리가 집을 잘못 찾아온 거라고 확신했을 정도예요. 난 현관 매트 위에서 고개를 까딱이며 헐떡거리는 그 작은 녀석을 보았을 때부터 의심을 품었다니까요. 그 녀석은 좀도둑이라기보다는 채소장수처럼 보입니다!"
그 순간 골목쟁이네가 손잡이를 열고 들어왔다. 툭 집안의 기질이 승리한 것이다. 갑자기 그는 격렬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침대에서 자지 않아도 좋고, 아침 식사를 걸러도 좋다고 느꼈다. '매트 위에서 고개를 까딱이며 헐떡거리는 그 작은 녀석' 이라는 말이 그를 거의 격렬하게 만들었다. 이후로 골목쟁이 집안의 기질이, 그가 지금 한 짓을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빌보. 넌 정말 바보였어. 제 발로 불구덩이에 걸어들어갔지.'
"말하는 걸 엿들었다면 죄송합니다. 난 당신이 뭘 말하는지, 또 좀도둑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물로 여기고 있다는 내 판단이 옳다고 봅니다(이건 그가 소위 점잔을 빼며 말하는 방식이었다). 분명하게 설명하지요. 나는 문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어요. 지난주에 페인트칠을 했거든요. 당신은 분명, 집을 잘못 찾아온 겁니다. 나도 현관 계단에서 당신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자마자 의심을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제대로 찾아왔다고 합시다. 원하는 걸 말 해 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것을 해보겠습니다. 설령 여기부터 동부 끝 최후의 사막까지 가서 사나운 괴수족과 싸워야 한다 할지라도요. 내겐 툭 집안 황소울음꾼이라는 고조 사촌할아버지가 계셨는데..... ."
글로인이 말을 받았다.
"그래요, 그래.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죠. 난 바로 당신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확실히 문에는 표시가 있었어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거 말이에요. 예전에는 그런 표시가 많이 있었지요. '좀도둑이 적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아주 신나는 일거리를 구합니다.' 보통은 이렇게 해석되는 표시지요. 좀도둑이라는 말이 거북하다면 대신 전문 보물 사냥꾼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쓰는 사람들도 있죠. 우리한테는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간달프가 이 지역에 그런 분야의 일거리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했고, 바로 여기에 수요일 차 마실 시간에 만나게 주선하신 겁니다."
그러자 간달프가 말했다.
"물론 표시가 있었지. 내가 해놨거든. 아주 좋은 이유가 있어서지. 자네들이 자네들 원정에 참여할 열네 번째 사람을 구해 달라고 부탁해서 내가 골목쟁이네를 골랐네. 내가 사람을 잘못 골랐거나 집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한다면, 자네들은 열세 명이 원정을 떠나서 마음대로 불행한 일을 겪든, 아니면 돌아가 석탄이나 캐게."
그가 대단히 화가 나서 글로인을 향해 얼굴을 찌푸렸기에, 그 난쟁이는 몸을 움츠렸다. 빌보가 질문을 하려고 막 입을 열려는데, 간달프는 몸을 돌려 얼굴을 찌푸리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할수 없이 빌보는 입을 꽉 다물어야 했다.
"그래야지. 더 이상 논쟁은 하지 말게. 난 골목쟁이네를 선택 한 거고,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네들 모두에게 충분한 이유가 되네. 내가 그를 좀도둑이라고 부르면 그가 바로 좀도둑이네. 아니면 때가 되면 좀도둑이 될 거야. 그는 자네들이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능력이 많은 사람이고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재능이 있지. 자네들이 혹시 모두 살아남는다면 내게 감사하게 될걸세. 자, 이보게 빌보, 등불을 가져와서 여기에 빛을 비춰 보게."
붉은 갓이 달린 커다란 등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간달프는 지도처럼 보이는 양피지 조각을 펼쳐 놓았다.
"이건 자네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일세, 소린. 이건 외로운 산의 지도라네."
그는 난쟁이들의 열띤 질문에 대답했다. 소린이 힐끗 본 후 실망한 듯 말했다.
"내 생각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난 외로운 산과 그 산을 둘러싼 지역을 아주 잘 압니다. 나는 어둠숲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거대한 용들이 번식하는 히스의 황야도 압니다."
"산에 붉은색으로 용이 표시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없어도 우리는 용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말이지요."
발린이 말하고 나자, 마법사가 말했다.
"자네들이 알아채지 못한 게 하나 있어. 그건 바로 비밀 입구라네. 서쪽에 룬 문자가 보이고 또 다른 룬 문자에서 그걸 가리키는 손이 보이지? 그것이 지하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 표시야."
소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한때는 비밀이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도 비밀일지 어떻게 압니까? 늙은 스마우그는 이제 그 곳에 아주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 동굴에 있는 것들을 다 알아냈을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그걸 이용할 수 없었을 거야."
"왜요?"
"그게 너무 작으니까. 룬 문자로 '문 높이 약 150센티미터 그리고 세 명이 걸어갈 수 있는 넓이' 라고 쓰여 있어. 스마우그는 어린 용이었을 때도 그 정도 크기의 구멍은 기어다닐수 없었어. 하물며 이제는 수많은 난쟁이들과 너른골 인간들을 포식한 후니까 더더욱 어림도 없지."
"내겐 아주 큰 구멍처럼 보이는데요."
용을 본 적도 없고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호빗굴집밖에 없는 호빗이 새된 소리로 말했다. 그는 정말 흥분하고 흥미를 느껴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빌보는 지도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그의 현관에 '시골 순환로'의 큰 지도를 걸어 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산책길들을 붉은 잉크로 표시까지 해두었다. 빌보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큰 입구가 용은 말할 것도 없고 외부 사람들 한테 비밀로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아주 작은 호빗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이 입구가 비밀로 남아 있는지는 직접 가서 보기 전까지 알 수 없겠지. 지도로 볼때 내 생각엔 그 산의 비탈과 똑같이 보이게 만들어진 비밀문이 있을 것 같아. 보통 난쟁이들이 사용하는 방식이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소린이 말했다.
간달프가 계속 말했다.
"내가 하나 빠뜨린 게 있네. 지도에 열쇠가 달려 있었어. 작고 이상하게 생긴 열쇠야. 여기 있네. 잘 간수하게."
그는 긴 원통 모양에 정교하게 홈이 패인 은빛 열쇠를 소린에게 건넸다.
"그러겠습니다."
소린은 이렇게 말하며 목에 걸린 멋진 목걸이에 열쇠를 끼워 넣고는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젠 사태가 좀더 희망적으로 보이는데요. 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상황이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동쪽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갈 작정이었지요. 긴 호수까지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문제가 생기겠지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문제가 생길걸세. 내가 동쪽 길에 대해 아는 바로는 말이야."
간달프가 끼어들었지만, 소린은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거기부터 달리는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갈 겁니다. 그 다음에는 외로운산의 그림자에 덮인 그 아래 계곡의 오래 된 도시. 폐허가 되어 버린 너른골까지 가지요.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정문을 통해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바로 정문 입구에서 강이 흘러 나와서 그 산의 남쪽에 있는 거대한 암벽을 넘어 흐릅니다. 용도 그 정문으로 다니지요. 그것도 너무 자주 말입니다. 만약 용이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럴 겁니다."
마법사가 말했다.
"정문으로 가는 건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야. 힘센 용사나 영웅과 함께 간다면 모를까. 나도 용사를 한 명쯤 찾아보려 했지만 용사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 싸우느라 바쁘고 이 근처엔 영웅이 귀하다네. 아니, 아예 찾을 수도 없지. 이 근방에서는 칼은 거의 무뎌졌고 도끼는 나무를 베는 데나 쓰이고 방패는 요람이나 접시 덮개 정도로나 쓰이지. 다행히 용은 멀리 있으니까 전설적인 존재나 다름없게 되었지. 그게 내가 좀도둑 행각을 택한 이유라네. 특히 비밀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 다음부터 말일세. 그래서 우리의 작은 좀도둑 골목쟁이네 빌보가 선택되고 선발되었지. 자 이제 계획을 좀 짜 보지."
소린이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도둑 전문가께서 어떤 제안을 해주신다면 말이지요."
그는 짐 짓 공손한 척하며 몸을 돌려 빌보를 바라보았다.
"먼저 나는 현재 상황을 좀더 알았으면 좋겠어요."
빌보는 온통 혼란스럽고 또 속으로 약간 떨렸지만 아직까지는 툭 집안 자손답게 계속 밀어붙였다.
"내 말은 황금과 용,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어떻게 거기에 있고, 또 누구 것인지 등등을 알아야겠다는 뜻이에요."
소린이 말했다.
"맙소사! 지도 못 봤나? 우리 노래를 듣지 않았어? 우리가 몇시간 동안이나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난 그걸 아주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싶다고요."
그는 간달프의 추천에 걸맞게 현명하고 신중하며 전문가답게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며 딱딱한 태도로 고집스럽게 말했다. 보통 그는 자기에게 돈을 빌리러 온 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위험 정도와 경비, 필요한 시간과 보수 등에 대해서도 알아야겠습니다."
사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이 모험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였다.
소린이 대답했다.
"아, 좋아. 말해 주지. 오래 전 우리 스로르 할아버지 시대에 우리가족은 먼 북쪽땅에서 쫓겨나 재산과 연장을 모두 가지고 지도에 있는 바로 그 산으로 갔지. 그건 내 아득한 조상이신 스라인 할아버지께서 발견하신 산인데, 조상님들은 거기에서 광석을 채굴하고 갱도를 뚫고 거대한 궁전과 큰 작업장을 지었어. 게다가 그 분들은 상당량의 금과 엄청나게 많은 보석을 발견하신 것 같아. 어쨌든 그 분들은 아주 부유하고 유명해졌네. 우리할아버지는 '산아래 왕' 이 되시고, 남쪽에 사는 인간들에게 대단히 존경받으셨지. 인간들은 점차 달리는 강을 따라 모여들기 시작해 산 그림자에 덮인 계곡까지 이르렀고, 그 당시 그 곳에 유쾌한 마을, 너른골을 건설했네. 왕들은 우리의 대장장이들을 청해 데려갔고, 가장 기술이 없는 자에게도 아주 풍족하게 사례해 주었어. 아버지들은 자기 자식들을 도제로 채용해 주길 원했고 후하게 사례했지. 사례비를 대개 식량으로 받아서 우리는 곡물을 경작하거나 찾기 위해 수고할 필요가 없었어. 전체적으로 보아 그 때가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시절이었지. 아주 가난하다는 이들도 쓰고 남은 돈을 빌려줄 수 있을 만큼 풍족했으니까. 그렇게 여유가 많았으니, 우리는 대단히 경이롭고 마술적인 장난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저 순전히 재미삼아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만들었지. 요즘 세상에서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이었어. 우리 할아버지의 궁전은 갑옷과 보석과 세공품과 컵들로 가득찼지. 너른골의 장난감 시장은 북쪽땅의 불가사의 한 곳으로 평판이 자자했지.
분명 그게 용을 끌어들인 거야. 잘 알다시피 용들은 인간과 요정과 난쟁이들에게서 황금과 보석을 훔치는데, 어디서건 가리지 않고 발견하는 족족 훔치지. 그 놈들은 약탈한 물건들을 자기들이 살아 있는 한 빼앗기지 않고 지킨다네. 그런데 용이란 놈들은 살해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니까 실제로는 그 보물을 영원히 소유한다고 할 수 있네. 그 놈들은 그냥 소유하고만 있을 뿐 놋쇠 반지 하나도 즐길 줄 모르지. 사실 그 놈들은 지금 시장에서 얼마에 거래되는지 그 값은 잘 알지만 훌륭한 물건과 조야한 물건을 구별할 줄도 모른다네. 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 줄 모르고 심지어는 갑옷 비늘이 조금 느슨해져도 고칠 줄 몰라. 그 당시 북쪽땅에는 용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차츰차츰 금이 귀해졌다네. 난쟁이들은 남쪽으로 도망가거나 살해당했어. 용들이 저지른 낭비와 파괴는 점점 심해지고 말이야. 그 중에 가장 탐욕스럽고 강하고 사악한 스마우그란 용이 있었지. 어느 날 그 놈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남쪽으로 왔어. 처음에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북쪽에서 폭풍이 몰려오는 줄 알았네. 산 위의 소나무들은 바람에 삐걱거리고 갈라졌지. 밖에 있던 몇몇 난쟁이들은 (다행이도 나도 그 중 한 명이었지. 당시 모험을 좋아하던 젊은이였고 항상 이리저리 돌아다녔기에 그 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거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용이 불꽃을 뿜으며 우리 산 위에 내려앉는 걸 보았지. 그 놈은 비탈로 내려왔는데 그 놈이 숲에 닿자. 숲이 모조리 불 타 버렸어. 그때쯤 너른골에서는 일제히 종이 울렸고 전사들은 무장을 했지. 난쟁이들이 거대한 문으로 달려나왔지만 거기엔 벌써 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곳에선 아무도 도망치지 못했다네. 강물은 증기를 내뿜으며 끊어올랐고 너른골은 안개로 뒤덮였어. 안개가 자욱하게 덮인 가운데 용은 그들을 덮쳐 대부분의 전사를 죽이고 말았지. 흔히 있는 불행한 이야기인데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났어. 그 놈은 다시 산으로 돌아가서 정문으로 기어들어가 방들과 길들과 터널과 좁은 길과 복도와 지하실, 큰 건물들과 통로들을 모조리 다 찾아다며 휩쓸었어. 안에 살아남은 난쟁이라고는 한 명도 없게 되었지. 그 놈은 보물을 몽땅 차지해 버렸어. 아마도 그 놈은 궁전 안쪽 깊숙한 곳에 보물을 커다란 더미로 쌓아 올린 다음 그걸 침대 삼아 그 위에서 잠을 잘 거야. 용이란 놈들은 항상 그렇게들 하니까. 그 뒤 그 놈은 거대한 문으로 기어나와서 밤을 틈타 너른골로 가서는 사람들, 특히 젊은 여자들을 잡아가 먹어 버렸지. 결국 너른골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떠나 버렸어. 지금 그곳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르네. 하지만 요즘에도 긴호수가 끝나는 지점에서 더 멀리 산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서 사는 이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용케 바깥에 남았던 우리 몇 명은 숨어 있던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스마우그를 저주했어. 거기서 예기치 않게 수염이 불에 그을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지. 그분들은 아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말씀은 거의 없으셨어. 어떻게 피해 나오셨는지 묻자 그 분들은 입을 다물라고 하시며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알게 될 거라고 하셨지. 그 후로 우린 그 곳을 떠나 여기저기 헤매면서 대장장이 일이나 심지어 석탄 광부 같은 비천한 일을 하며 연명해야 했네. 하지만 우리는 약탈당한 보물을 결코 잊지 않았어. 지금은 우리가 상당한 재물을 비축했고, 형편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인정하지만(이부분에서 소린은 목에 걸린 금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가능하다면 그 보물을 되찾고 스마우그에게 저주를 퍼부을 작정이지. 난 가끔씩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탈출한 데 의문을 품어 왔네. 이제야 그 분들만이 알고 있던 비밀의 옆문이 있었음을 알게 된거야. 분명 이 지도는 그 분들이 만드셨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간달프가 그것을 손에 넣게 되었고 왜 적법한 상속자인 내가 물려받지 못했는지 궁금하군."
그러자 마법사가 대답했다.
"난 그것을 '손에 넣은' 게 아니라 받은 걸세. 자네도 기억하겠지만 자네 할아버지 스로르는 모리아의 광산에서 고블린 아조그에게 살해당했네."
"맞습니다. 그 이름에 저주를."
소린이 말했다.
"자네 아버지 스라인은 4월 21일에 떠났고 지난 목요일로 정확히 1백 년이 되었네. 그후 자네는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지."
"맞습니다, 맞아요."
소린이 말했다.
"자, 자네 아버지는 자네에게 전해 주라고 내게 이것을 주었네. 그리고 그걸 전달하는 데 내 나름의 시간과 방법을 택했다고 해서 자네가 나를 비난할 수는 없을걸세. 자네를 찾는 데 무척 고생을 많이 했거든. 자네 아버지는 내게 이 지도를 건네 줄 때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고 자네 이름도 말해 주지 않았네. 그러니 사실 나는 치하와 감사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네! 자, 여기 있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소린에게 지도를 건넸다.
"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소린이 말했다. 빌보는 자기라도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느꼈다. 그 이야기는 모든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법사는 천천히 그리고 엄숙하게 말했다.
"자네 할아버지는 모리아 광산으로 가기 전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 지도를 아들에게 주었네, 자네 아버지는 자네 할아버지가 살해된 후 지도를 갖고, 되든 안 되든 해보려고 떠났지. 그는 아주 불쾌한 모험을 수 없이 겪었짐만 결국 그 산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네. 나는 강령술사의 지하감옥에서 죄수로 갇혀 있는 자네 아버지를 보았네. 어떻게 그가 거기에 갔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말이야."
"도대체 당신은 거기에서 뭘 하고 계셨어요?"
소린은 몸서리를 치며 물었고, 난쟁이들도 모두 몸을 떨었다.
"신경쓰지 말게. 난 평소처럼 뭔가를 찾고 있었지. 그건 고약하고 위험한 일이었지. 심지어 나 간달프조차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지. 자네 부친을 구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어. 자네 부친은 의식을 잃고 횡설수설하고 있었고, 지도와 열쇠만 빼고 거의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네."
"우린 오래 전에 모리아의 고블린들에게 복수를 했어요. 이제는 강령술사에게도 다시 생각할 거리를 줘야겠군요."
소린이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말하지 말게! 그는 난쟁이들의 힘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힘이 강한 적일세. 다시 전 세계 사방에 있는 난쟁이들을 모두 불러모을수 있다 해도 말이지. 자네 아버지가 원한 것은 아들이 지도를 읽고 열쇠를 사용하는 걸세. 용과 외로운산 만으로도 자네는 벅찬 과제야."
"들어 보세요, 들어 봐!"
갑자기 빌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뭘 들으라는 거야?"
그들 모두 갑자기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너무 당황해서 정신없이 대답했다.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뭔데?"
그들이 물었다.
"글쎄, 내 말은 당신들이 동쪽으로 가서 둘러보아야 한다는 거죠. 어차피 옆문이 있고, 용들도 때때로 잠이 들 테니까요. 현관 계단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면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겁니다. 그리고 우린 하룻밤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었어요. 내 말뜻 이해하겠죠? 이제 잠자리에 들고 아침 일찍 떠나는 게 어떨까요? 당신들이 가기 전에 훌륭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겠습니다."
"자네 말은 '우리가 가기 전' 이라는 뜻이겠지. 자네가 바로 좀도둑 아닌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현관 계단에 앉아 있는 것도 자네가 할 일 아닌가? 하지만 잠자리와 아침식사에는 동의하네. 난 여행을 떠날 때는 햄에 계란 여섯 개를 먹는 걸 좋아해. 삶지 말고 프라이로. 노른자위가 깨지지 않게 조심하게."
소린이 말했다. 결국 다른 난쟁이들도 모두 아침 식사를 주문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봉사한다' 는 말도 덧붙이지 않아서 빌보는 대단히 화가 났다. 호빗은 그들 모두에게 방을 마련해 주고 빈 방들에다 의자와 소파로 침대를 만들어 그들을 다 들여보낸 다음 매우 지쳐서, 전혀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자기의 작은 침대로 갔다. 잠들기 전에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했는데, 그건 그들 모두에게 형편없는 아침 식사를 마련해 준답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고생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툭 집안의 기질은 사라져 가고 있었고, 아침이 되면 여행을 떠나리라는 것도 이제는 그다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그의 방 옆 가장 좋은 침실에서 소린이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안개산맥 너머
깊은 지하감옥, 오래 된 동굴로
새벽이 밝기 전에 떠나자.
오랫동안 잊혀진 우리의 황금을 찾아서.
빌보는 그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귓전에 울리는 그 노래 때문에 아주 불편한 꿈을 꾸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는 날이 밝은 치 한참 후였다.
- 계속 -